관객노트1(공연)

두번째 그들의 방이 열린다. (현대무용단-푸름)

데스피스Park 2002. 10. 29. 01:04
18일 01시 느닷없이 코끼리가 걸음마(휴대폰벨소리)를 시작한다. 밤의 기운을 즐기는 박쥐과인 내겐 전화를 받는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무시하기로 한다. 코끼리가 더 성을 내며 걸음이 빨라진다. 쉽사리 벨소리가 끊기지 않는다. '끈질긴... 날 아는 놈이다' 결국 졌다.

"여보세요"(다소 신경질적으로)
"오빠, 저 xx예요. 오늘 공연 보러 와"(전혀 미안해 하지 않는 뻔뻔함으로)
"뭐라구?"(놀라서)
그녀임을 눈치 챈다.
"임마, 싫어"(삐져서)
"왜?"(알면서 모르는 척)
"임마, 팬클럽회장에게 이제 연락해!"
"쏘리, 좀 바빴어.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으로 늦은 7시 30분에 봐"
뚜뚜뚜우우......
늘 이런 식이다.
'젠장, 오늘 밤은 꽝이다'

그 x는 무용가다. 무용가?
그냥 춤꾼이다. 작년에 모대학 무용과를 졸업해서 푸름현대무용단에서 활동하는 아주 싸가지 없는 후배다. 하지만 밉상은 아니다. 춤에 대한 열정, 몸의 느낌이 훌륭한 x이기에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가기로 한다.
부랴부랴 밤의 방해꾼으로 몇몇 후배들에게 전화를 한다. 난 그녀의 팬클럽회장이므로

예술의 전당. 이 놈을 대할 때마다 풍차를 괴물로 오인한 돈키호테의 맘을 이해하게 된다. 공연을 보러 이 곳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항상 낯설다. 이곳이 대중을 위한 곳인지 아니면 권위의 상징인지... 혹시 그 대중(?)을 위한 곳...거대한 놈.
'예술을 귀족적이라 여기는 건가?'

이따위 상념으로 자유소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집안 잔치다'
몇몇 얼굴을 아는 무용과후배들과 무용하는 티를 내는 사람들. 이것이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현주소다. 스산한 겨울만큼이나 차다.

팜플렛을 집어든다. 다섯 무용가들의 단상을 무용으로 표현했다고 소개한다.
늦은 7시 30분 정각.

거리로 형상화된 무대에 각 단상에 출연하는 무용가들이 오브제형식으로 서 있고 짧은 인사말로 공연을 시작한다.

하나. 김인하 '물구나무 선 거리'
- 혼란한 거리에 소외된 한 여성의 맘을 표현
'아주 어렵다. 현대무용도 하나의 퍼포먼스여서인가?
아니면 여자의 심리가 복잡해서 인가? 여러번 무용을 보지만 이런 무용을 접할 때는 난감하다'

둘. 염계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 향기로 인간의 냄새를 표현
'유럽의 어느 영화감독작품이 연상된다. ...요리사 그리고 정부인가? 암튼 음울한 첫 장면 그러나 반전. 갑자기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여성무용가들의 몸짓또한 발랄하다. 그러나 향기로 표현한다는 말은 이해가 안된다. 음식으로 표현했다면 모를까? 인간의 냄새가 단지 그거라면...아니다. 표현하기엔 너무 추상적인 선택'

셋. 이기영 '닭2-뛰는 놈 위에 나는 놈'
- 인간의 욕구중 날고자하는 욕망을 운동선수의 모습으로 표현
'다소 식상한 내용과 주제. 하지만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관객과 호흡한...'

넷. 한시완 '2000 millennium love'
- 한없는 그리움을 표현
'사막의 한 가운데 여자가 서 있다. 주제와 적절한 무대. 왠지 고도...가 연상된다. 고도무대로 사막도 괜찮을 것 같다. 하기사 황량하기만 하면 되니까? 느낌이 좋다. 앵...? 그러나 평범한 몸짓에 필도 별루...제목만 거창하군'

다섯. 이은주 '아버지의 방'
- 우리아버지들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표현
'드뎌, 우리 x 가 나온다. 날카로운 눈을 부릅뜬다. 오. 첫장면부터 폭소가 터진다. 무용을 보다가 폭소가...믿기질...이거다. 일상적인 소재를 무용과 퍼포먼스 그리고 마임으로...왠지 찰리채프린의 무성영화를 보는 느낌. 관개호응 짱. 무용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 하하하ㅏㅏㅏㅏ'

커튼콜. 공연이 막을 내린다.
출연자통로에서 선배가 아닌 그녀의 팬으로 기다린다. 설렌다. '녀석, 날 여전히 실망시키지 않는군'

'오빠, 공연 어땠어요?"(이제서야 예의를 갖추는 듯)
"좋았어"(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참으며)
"오빠, 공연팀이 기다리거든. 담에 술한잔."
"그래, 담에 술한잔"
아쉬움으로 그녀를 보낸다. 하지만 기분이 왜 이리 좋은지...'공연을 망치면 화장실에서 울고 나오는 녀석인데 오늘은 눈물을 보이지 않...'
예술의 전당을 나오면서 발걸음이 가볍다. 무용도 좋은 공연이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음으로...
'x 야, 너의 열정이 있는한 난 너의 영원한 팬이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일을..."